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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제 7 호 행복정도는, 누구나 누릴 수 있잖아

  • 작성일 202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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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494
이선민

행복정도는, 누구나 누릴 수 있잖아

이선민 정기자

 

  한 학기 종강 후, 방학을 앞두고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 와서 좋아하는 빵을 먹으며 글을 쓴다. 내 발은 노래의 박자에 맞추어 움직이고 있다. 수많은 주제 중에 어떤 주제를 선택할지 고민하면서 빵을 먹고 있으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온다. 행복, 행복이 싫은 사람이 있을까? 단언컨대 나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을 싫어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누군가는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또 전시회를 방문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 가끔 일상을 살아가는 게 답답하다고 느끼면 산에 있는 절에 가서 가만히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시간을 흘려보내곤 한다. 절에 간 김에 기도할 때면은 “우리 가족 항상 행복하게 해주세요”라고 빈다. 왜일까? 누군가에게 부탁하면서까지 왜, 행복이라는 단어에 집착하고 행복이 주는 의미를 놓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닌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지를 곱씹으며 이 글을 함께 즐겨준다면 고마울 것 같다.

 

(1) 당신에게 행복은 무엇인가요?

  행복이라는 단어를 뭐라고 생각하는지 질문을 띄우고 싶다. 나 같은 경우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상황이 딱 떠오른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과정을 거친다. 행복을 영위하기 위해 그 어떠한 고통도 감내하고, 고통의 이유를 미래의 행복을 위한 과정이라는 말로 포장하기도 한다. 단순히 우리는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많은 과정과 이유가 붙어야만 하는 걸까? 행복을 누리기 위한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나 같은 경우에는 우울감이 몰려오거나 슬픔을 감내해야 할 때가 온다면, 소소하게 좋아하는 몇 가지 방법을 실천하면서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먼저 좋아하는 카레 집에 가서 수프 카레를 포장해 온다. 매장에서 직접 먹어야 맛이 있지만, 이때만큼은 오로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서 번거로움에도 포장을 한다. 그 이후에 평소 자주 먹는 음료수와 케이크를 포장해 온다. 이제 집에서 따뜻한 수프 카레를 먹으면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간식을 먹는다.

  이렇게 하면 이 순간만큼은 좋아하는 것들로 내 시간을 가득 채우기 때문에 우울한 감정보다는 ‘이렇게 하니까 너무 행복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렇게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2) 행복은 사소한 곳에서 시작하여 나에게 스며들어온다.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다들 한 번쯤은 보여주는 행복을 경험해 본 적 있지 않은가? 내 삶의 주체인 나, 나의 감정을 먼저 살피고 사소하지만, 행복함을 느끼는 행동을 하는 것은 어렵지도 않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에 더 솔직하고 표현을 잘한다고 한다.

  어릴 때 사촌 동생은 항상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 만들기 도와줘서 고마워, 난 언니같이 좋은 사람이 우리 언니라서 너무 행복해”라고. 그때는 그저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간단한 인사치레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겐 단순히 설명서를 읽고 아이가 만드는 과정에 도움을 준 것밖에 없는데, 그 도움의 행동이 동생에게는 도움의 과정을 더불어 결과에 이르기까지 행복함을 표현할 수 있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작다고 생각한 동생의 세상에서 내 도움이 큰 기억으로 남았다니, 다시 생각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는 순간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감정 표현에 인색하게 되었을까? 이 순간이 불편하다면 불편하다고, 행복하다면 행복하다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못한다면, 그건 가짜로 버무려진 나의 보여주기식 감정, 행복이 아닐까?

 

(3) 나를 위한 행복은 없나요?

  이런 보여주기식 행복함이 추구되는 이유에는 SNS의 발달이 한몫한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인스타그램이 있다. 인스타그램 속 스토리라는 기능은 24시간 동안 사진 또는 동영상을 올려서 팔로워라면 함께 볼 수 있다. 인스타그램의 게시물, 스토리를 보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행복한 것처럼 보인다.

  사실 나는 21학번으로, 2023년도에 상명대학교로 편입했다. 상명대로 편입하기 전, 세상에 내 자리는 존재할까?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아직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저 친구는 어느새 나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해외여행도 자주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와 부럽다,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다 보니 나도 다른 곳에 여행을 가면 꼭 사진을 한 장씩 올리게 됐다. 나도 누군가가 보기에 멋지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싶다는 마음에 허영된 마음이 투영된 모습을 올리게 된 것 같다.

  이렇게 부러움으로 포장된 모습을 본 또 누군가는 이런 거짓된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누군가가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부럽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진정한 나의 행복감을 추구하는 모습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할 모순점이라고 생각한다.

  순간의 내 일상의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SNS를 활용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의 모습을 보고 내가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 이 행동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나의 보여줄 수 있는 모습만을 공개하는 것이 행복함을 영위하는 길일까? 여기서 나는 사람은 태어난 모습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앞으로의 꿈꾸는 각자의 미래도 분명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람마다의 추구하는 행복의 모습과 행복의 방향성, 그리고 그 길이 같다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어릴 적 자주 보던 이솝우화에 나오는 두루미와 여우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이들이 음식을 먹을 때 같은 그릇을 사용할 수 없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의 행복과 나의 행복도 동일 선상에 둘 수 없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과 취향이 모두 다른데, 왜 ‘행복’이라는 점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모습을 추구하고 나도 저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생각해 볼 문제이자 어디서나 우리가 겪는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에게 행복이란, 행복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행복하고 싶지만, 현실에 치여 미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행복해지려면 무언가 행동을 취해야 하고, 그에 따른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이 들기 때문에 선뜻 도전하기 어려워하는 것 같다. 한국은 아직 개인주의보다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남들과 같은 흐름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경향이 있다. 행복을 위해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시간과 그럴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나만의 기준을 성립해야만 온전한 행복의 만족도를 추구할 수 있다고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위 글을 읽고 아직도 행복이라는 단어가 막연하고 낯설어 스스로 돌아보고 고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온전히 나만의 기준을 성립하고 나에게 집중하라고 해서 꼭 나 혼자만의 행복이라고 단정 짓지 않아도 좋다. 행복은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사회적 관계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많은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관계는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려운 순간에도 힘이 된다. 언제 이 행복이 사라질까 라는 두려움보다는 힘이 든다면 가족, 친구, 동료 등의 도움을 받아 성과 같은 단단한, 그러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남들과 행복의 기준이 좀 다르면 어떤가, 그것대로 우리는 매력 있는 사람인데.

누구보다 자신의 행복을 소망하는 당신을 위해, 오늘도 한 걸음 더 행복해집시다!





 [참고자료]

1. 유원경 기자, 출가 서원의 고민, 함께 나누는 훈련, 원불교 신문, 24년 08월 16일, https://www.w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0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