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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제 763 호 고르다 끝나는 시대, OTT의 역설

  • 작성일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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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37
이은민

▲대표적인 OTT 플랫폼의 로고 (사진: https://www.business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0123#google_vignette)


  무료한 주말 오후, 넷플릭스나 티빙 등 OTT 플랫폼을 켜고 볼만한 콘텐츠를 고르다가 포기해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쏟아지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볼 수 있는’ 콘텐츠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볼만한’ 콘텐츠를 찾지 못해 결국 플랫폼을 종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는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양성 속에서 오히려 선택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연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된 것일까, 아니면 더 많은 선택 앞에서 길을 잃고 있는 것일까.


OTT의 확산과 콘텐츠 소비 방식 변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 결과 (사진: https://www.newspim.com/news/view/20251215000031)


  OTT는 지난 10년 사이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지난 2016년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 이후 우리나라의 OTT 시장은 매년 28%씩 성장했다. 더불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5 콘텐츠 이용행태 조사 결과, OTT는 최근 1년 콘텐츠 분야별 이용률에서 89.1%로 1위에 올랐다. 대한민국 국민 10명 중 9명은 OTT 플랫폼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미디어 소비 구조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과거에는 정해진 시간에 TV 앞에 앉아 방송을 시청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개인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 보는 온디맨드 방식이 보편화되고 있다. 소비자가 콘텐츠 선택의 주체가 되어 개인의 취향과 일정에 맞춰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콘텐츠 선택의 폭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 하나의 플랫폼만으로도 수천 편의 영화와 드라마를 제공하며,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는 경우 그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처럼 OTT 서비스의 확산은 소비자에게 이점만을 제공하는 듯 하지만, 이 능동적 선택이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OTT 서비스의 확산으로 인한 '선택 피로' 현상


▲선택 피로 현상 (사진: Chat gpt)


  하나의 콘텐츠를 선택하기까지 OTT 플랫폼 소비자는 장르와 줄거리, 배우, 평점까지 다양한 요소를 동시에 고려하게 된다. 여기에 플랫폼별 추천 콘텐츠까지 더해지면서 비교 대상은 더욱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는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게 되고, 결정이 지연되거나 선택 자체를 포기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은 심리학에서 ‘선택 과부하’ 또는 ‘결정 마비’로 설명된다.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정보 처리에 필요한 부담이 급격히 증가하고, 곧 의사결정 능력의 저하로 이어진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기대와 달리, 실제로는 선택의 질과 속도 모두가 떨어지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선택 피로 현상을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OTT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 역시 이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한다. 알고리즘은 소비자의 시청 기록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안하지만, 유사한 유형의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노출하거나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를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선택의 범위를 줄이기보다 오히려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으며, 소비자의 피로도를 가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소비자는 콘텐츠를 소비하기 전 단계에서 이미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모하게 된다. 실제로 OTT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무엇을 볼지 고르다가 시간을 다 보낸다’는 경험이 빈번하게 공유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험은 콘텐츠 소비의 효율성과 만족도를 동시에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OTT 서비스가 제공하는 풍부한 선택지는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는 동시에, 선택 과정에서의 부담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선택의 자유가 확대될수록 선택의 책임 또한 증가하며, 그 결과 소비자는 점차 피로를 경험하게 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OTT 플랫폼에 주어진 과제


  OTT 서비스는 콘텐츠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확장시키며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이끌어왔다. 이용자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콘텐츠 소비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크게 향상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동시에 선택의 과잉으로 인한 ‘선택 피로’는 새로운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콘텐츠의 양적 확대가 반드시 소비 경험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OTT 환경은 ‘풍요 속 결핍’이라는 역설적 상황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OTT 시대의 과제는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제공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의미 있는 선택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있다. 선택의 자유가 오히려 부담이 되는 현실 속에서, 이용자가 보다 쉽게 선택하고 온전히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찬웅 기자